이곳 경천대에 가보면 우담 채득기 선생께서 은거하신 곳이라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사실 우담 채득기 선생은 상대적이겠지만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이 아니라 저도 궁금하더군요..
그래서 검색을 해보니 생각보다 많은 자료가 있는건 아니네요...
그럼 우담 채득기 선생과 경천대에 대한자료중에일부를 소개드립니다..
조선 중기 학자로 상주에 내려와 경천대(당시 자천대)에 은거했던 우담 채득기는 병자호란 이후 인조대왕의
세 왕자(소현세자, 봉림대군, 인평대군)가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잡혀가게 되자
왕자들을 시봉하라는 나라의 부름을 받게 된다.
몇 번 고사하였으나 어쩔 수 없이 1638년 청나라 심양으로 떠나면서 채득기선생은 ‘봉산곡(일명 천대별곡)’이라는 시를 남겼는데 그 첫 구절이 ‘가노라 옥주봉아, 잇거라 경천대야’ 이다.
낙동강 일천삼백리중에서 최고의 절경이라 일컬어지는 상주의 경천대는 당시까지만 해도 자천대(自天臺, 하늘이 스스로 만든 바위)로 불리웠으나 이 천대별곡 이후로 자천대와 경천대(擎天臺, 하늘을 받들고 있는 바위)란 말이 혼용 돼다가 차츰 경천대로 굳어졌다.
우담 선생은 청나라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경천대 옆에 무우정이란 정자를 짓고 머물면서 경천대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주옥같은 시를 여러 편 남겼다.
우담은 “문장이 아무리 훌륭한들 누가 이를 다 시로 써 낼 것이며, 화공이 신묘한들 어찌 다 붓으로 그릴 것인가”라며 경천대의 절경을 극찬했다. 뿐만 아니라 경천대를 더 아름답게 하는 것은 경천대 맞은편 곱게 펼쳐진 백사장과 이른바 회상뜰로 불리는 벌판이다.
안동의 하회마을과 예천의 회룡포와 함께 낙동강의 3회(三回)로 불리는 회상 벌판은 물길이 휘감아 돌면서 은빛 백사장과 절벽이 함께 어우러져 기묘한 조화를 이뤄 마침내 낙동강 제1경을 만들어냈다.
또한 김영태님께서인터넷에 글중에경천대에 얽힌 왜곡이나
최근까지 우담선생의 가옥이 경천대 주변에 있었으나 상주시의 국민관광지 개발로 훼손되었다는 글을
보니 상당히 안타깝네요...
사진을 보시다보면 아시겠지만 경천대 주변도 4대강 사업이한창입니다...
위에 언급된데로 안동 하회마을과예천 회룡포와 함께 낙동강 3회로 불린다는
아름다운 대자연을 공사장비들이 파헤치는게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경천대 입구에 주차장을 지나면 폭포와 조각상이 방문객을 맞습니다..
아마 가까이 가보지는 않았지만 무장의 조각상은 임진왜란때의 의병장 정기룡 장군을 묘사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입구를 지나 전망대쪽으로 발길을 옮기니 재미있는 나무 조각들이 있네요...
돌탑도 상당히 많아서...
흔히 보는 돌탑이지만...
사실 볼때마다 누가 저렇게 쌓았을까 싶네요...
전망대 오르면서...
어쩐일인지 사진을 다 찍어 달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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